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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고종 23) 태어나 1947년에 돌아가셨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8·15광복 이후 정치가로서 활동했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양평 출생이다. 아 버지는 정현(鼎鉉)이며 어머니는 경주 이씨이다. 그는 14세 때에 용인 유세영(柳世 永)의 장녀와 혼인하였으나 4년 만에 사별하고, 그 뒤 충주의 진씨(陳氏)와 재혼하 였다.
1792년(정조 16)태어나 1868년(고종 5)에 돌아가셨다. 조선말기의 성리학자이 며 본관은 벽진(碧珍), 초명은 광로(光老)였으나 철종 사친(私親)의 이름을 피하여 개명하였다.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이며, 양평 출신이다. 회장(晦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의집(義集)의 딸이다.
1681년(숙종 7) 태어나 1763년(영조 39)에 돌아가셨다. 본관은 여주(驪州)이고, 자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이다. 1681년(숙종 7) 10월 17일, 평안도 운산에서 이하진 (??夏鎭)과 어머니는 권씨(權氏)사이에서 5남 4녀의 막내 로 태어났다. 중농학자로 실학의 싹을 틔운 인물이다.
1536년(중종 31) 태어나 1584년(선조 17)에 돌아가셨다.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로 본관은 덕수(德水),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 潭)·우재(愚齋)이다. 아버지는 증 좌찬성 원수(元秀)이며, 어머니는 현모양처의 사표로 추앙받는 사임당(師任堂) 신 씨(申氏)이다.
1363년(공민왕 12)에 태어나 1452년(문종 2) 돌아가셨다.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이다. 아버지는 판강 릉대도호부사(資憲大夫判江陵大都護府使) 군서(君瑞)이다. 조선왕조 500여 년을 통해서 청백리 명재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태어난 시기는 확실치 않으며 1111년(예종 6) 돌아가셨다. 고려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동현(同玄). 태조를 도운 삼한공신(三 韓功臣) 신달(莘達)의 현손이며, 집형(執衡)의 아들이다. 여진을 정벌하 여 동북 9성을 축조, 고려를 외침으로부터 지켰다. 윤관하면 일반인들은 ‘장군’이라하여 무신으로 생각하는데 고려의 장군들의 대부분은 문신이 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백자(白瓷)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백자와는 다른 것으로 매우 단단하고 잘 깨지지 않는 실용기로서의 기능이 강해진 것이다. 14세기 원대(元代) 경덕진(景德鎭)의 기술개발로 이루어진 난백유(卵白釉) 계통의 추부백자(樞府白 磁)의 영향으로 명대(明代) 크게 유행하며 이것이 조선 도자제작에 영향을 주어 새 로운 백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고려의 상감청자가 변모·발전하여 조선 세종 때에 전성기를 이루며 16세기 중 엽경까지 약 200여년 간 생산되었던 분청사기(粉靑莎器)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서 민적인 정취를 담아낸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이는 도자기이다. 분청사기라는 이름은 백토분장(白土粉粧)하여 표면이 백색을 띠고 유약을 바른 후 전체 색조가 회청색을 보여‘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
경기도의 전통문화를 소개할 때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도자(陶 瓷)이다. 고려시대 경기도에 중국 월주지방 벽돌가마와 청자(靑瓷) 제작 기술을 일찍 받아들여 경기도는 초기 청자의 발생지가 되었고, 조선시대 왕실 그릇을 담당한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경기도 광주에 설치 되면서 최상품의 백자(白瓷)를 생산하며 도자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경기도는 서울을 중앙으로 하여 북쪽으로 군사분계선이 그어짐으로 인해 장단군 이북이 북한으로 들어갔지만, 황해도·강원도·충청남북도와 연접하여 있어 각 지 역의 다양한 민속놀이가 한데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도시와 산, 바다 등 다양 한 생태 환경으로 도시·농촌·산촌·어촌의 민속놀이도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