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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면 광평리 홍법사에는 홍랑각시 보살이 모셔졌는데 거기에는 다 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명나라는 조선을 도와준 대가를 요구하였다. 조 공뿐만 아니라 예쁜 아녀자들도 바치도록 압력을 넣었다. 그리하여 각 지방 고을마다 명나라에 공녀로 바칠 아녀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홍법리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마을에 관원들과 함께 명나라 사신이 나타났다.
정남면 문학리에 자리한 서봉산(捿鳳山)은 예로부터‘봉황이 깃드는 산’이라 하여 신성시해왔으며 수려한 경관을 갖추었다.서봉산 중턱의 작은 암자에는 젊은 스님과 동자 한 명만이 거처하였 다. 젊은 스님은 매일같이 마을로 내려와 시주를 하러다녔다.어느 날 젊은 스님은 마을에 내려와 우물가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보 고 한눈에 반했다. 처녀는 늘씬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마치 하늘 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남한산성 서남쪽의 병풍산에 묻힌 별군관(別軍官) 서흔남에 대한 다 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때는 인조 14년 겨울. 불행히도 섣달 추운 겨울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고 전황은 불리해졌다. 대궐을 떠나 피신해야 할 매우 딱한 처지에 놓 이게 된 것이다. 신하들을 앞세워 강화도로 피난할 것을 결심하고 대궐 을 떠나게 된다. 그때는 이미 청나라 군사들이 서울 도처에서 잠복하였 을 때였다.
백제 개로왕 때의 일이다. 산이 첩첩이 쌓인 산골에 금슬 좋은 부부 가 떠꺼머리총각 동생을 데리고 사이좋게 살았다. 남편은 성품이 어질 었고 아내는 얼굴이 고왔으며, 동생 또한 몸이 건장하고 온순하여 집안 이 화목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다. 이른 아침부터 젊은 부부는 밖에 나가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렸다. 어 느 날 지게를 진 동생이, 일을 하는 형과 형수의 곁을 지나면서, “갔다 오겠어요”라며 소리를 쳤다.
내촌면 진목1리의 숙고개는 고려 때 개성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목으 로 이용되었다고 전해온다. 옛날 이 고개에는 샘이 솟아나 길가는 나그 네들의 목을 축여주었다. 그것도 보통 샘물이 아닌 술맛이 나는 술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샘을 찾는 이들이 지켜야 할 한 가지 불문 율은‘딱 한 잔’만 마시는 것이었다. 이 고개를 지나는 많은 나그네들의 입을 통해 이 신비한 술샘 이야기는 널리 퍼져 나갔다.
오성(이항복, 李恒福)과 한음(이덕형, 李德馨)이 결 혼을 한 뒤 과거준비를 위해 어느 절에 묵을 때의 이 야기이다. 어느 날 아침, 법당을 관리하는 스님이 오 성과 한음이 기거하는 방으로 찾아왔다.“두 분 도령, 큰일이 생겼는데 나를 좀 도와주시오.”“큰일이라니 무슨 일입니까?”
현덕면 덕목리 광덕산(廣德山) 심복사에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전 해진다. 파주 문산포에 천문을(千文乙)이라는 어부가 살았다. 어느 날 고기를 잡으려고 바다에 나갔다가, 이곳 덕목리 앞 아산만에 이르게 되었다. 고기잡이에 열중하던 중, 그물에 무엇인가 걸렸다. 그물을 당겨보니 큰 돌이었다.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다시 바다에 그물을 던졌다. 얼마 후 그물에는 또 무엇인가 걸린 듯하였다.
송북동 우곡마을은 본래 소(蘇)골이라 불렸던 마을이다. 조선 중기까 지만 해도 이 마을은 진주 소(蘇)씨의 동족마을이었다. 진주 소씨는 고 려시대부터 평택지방의 큰 성씨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소씨 가문 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이것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1360년 경) 때 소 정승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불악산 계 곡 마을마다 그를 따르고 숭상하였다고 하니 힘깨나 쓰는 토호였을 것 이다.
임진강은 삼국시대 당군(唐軍) 주둔 당시 표로하(瓢蘆河)로 호칭되었 으나 고려말 공양왕이 왕조신주(王朝神主)를 돌배에 모시고 도망갈 당 시 도감포 아래 연못에 수장되었다 하여 구연강(仇淵江) 또는 신지강(神 智江), 낙하(洛河) 등으로 불렸다. 이 강이 임진강이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탄현면 대동리의 소개비냥은 임 진강변에 우뚝 솟은 백석산(白石 山)절벽으로 그 아래 강물은 수심 이 깊었으며 비냥 위로 좁은 길이 나서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 도였다 한다. 바로 강 건너 장단에 김승경(金承景)이라는 힘이 세고 활 잘 쏘는 한량이 살았는데 파주 에는 종 출신으로‘쇠’라는 상노 와 전광세라는 중인이 살았다. 이 세 사람은 힘이 남달리 세어서 상대 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늘 한번 겨루어 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