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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상세정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 김준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 김준展

  • 주최 자하미술관
  • 참여작가 김준
  • 문의 02-395-3222
  • 홈페이지 www.zahamuseum.com/

전시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 김준展
기간
2017.08.11(금) ~ 2017.09.03(일)
전시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월요일 휴관)
장소
자하미술관 / (03022)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주최/주관
자하미술관
후원
-
요금정보
-
'김준' 하면 무엇보다 '문신(TATTOO)'이 떠오른다. 필자는 김준의 '타투' 작업을 크게 아날로그 타투와 디지털 타투로 구분한다. 이번 자하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준 개인전에는 기존의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한 C프린트 작품들이 아니라 3D 애니메이션(3d animation) 작품 5점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시 타이틀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이다.
김준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컬러풀하게 타투된 신체의 부위들로 제작된 영상작품이다. 그 신체의 부위들에는 악어나 타조가죽 그리고 뱀피나 송치의 가죽 문양들과 아름다운 화조도들 그리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포스터 이미지들도 새겨져 있다. 김준은 컬러플하게 타투된 신체의 부위들을 교묘하게 작동시켜 관객에게 신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하도록 자극시킨다. 일단 김준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5부작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다리들과 손들 그리고 유방과 배 또한 허벅지와 귀 등이 서로 뒤엉켜 꿈틀거리는 일종의 '프롤로그' 영상, 여자의 얼굴보다 큰 손이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때리는 '웨이크 업(Wake up)', 미끈한 두 다리가 등장하여 춤을 추는 '댄스(dance)', 마치 자동차 사고현장을 연상케 하는 자동차 부품들과 신체의 부위들이 등장하는 '크래쉬(CRASH)', 손과 팔에 비누물방울 같은 것들이 점점 부풀다가 터져 사라지는 '버블(BUBBLE)' 등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김준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자다」에 등장하는 신체의 부분들 움직임은 한결같이 어색하다. 12년이 넘도록 3D 맥스 작업에 몰두한 베테랑이 왜 신체의 부분들 움직임을 부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일까? 신체의 부분들 움직임뿐만 아니라 신체 부위들의 크기나 위치도 이상하다. 발보다 큰 귀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얼굴보다 큰 손을 출현시키고, 신체들의 위치도 생뚱맞다(거대한 귀는 유방들 사이에 위치한다). 두 개의 유방은 크기도 서로 다르고, 그 유방들은 옆으로 나란히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에 위치한다. 다리의 두께만한 손가락도 있다. 따라서 김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각각의 신체 부분들은 서로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 신체 부위들은 제각각 다르게 작동한다고 말이다. '웨이크 업'에서 얼굴보다 큰 손으로 여자의 뺨을 때려도 여자가 깨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손과 얼굴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김준이 신체를 사지(四肢)로 절단해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준다. 뭬야? 김 감독이 마치 '토막 살인사건'의 살인자처럼 들린다고요?

김준은 우리 머리 속에 각인된 유기체적인 신체에 대해 '토막살인'을 자행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체를 유기체적인 기관들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전 하에 암묵적으로 신체 부위들에 대한 위계질서를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사례로 '머리중심주의'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김준은 그 위계질서에 반기를 들기 위해 신체의 사지를 '토막'내 버린다. 결국 그 토막 난 신체들은 평등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김준의 '토막살인사건'은 들뢰즈(Gilles Deleuze)의 '기관 없는 신체(body without organs)'와 닮았다.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신체의 단절을 뜻한다. 따라서 신체와 단절된 기관이 무엇과 접속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될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들뢰즈는 '기관 없는 신체'를 관계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 일종의 '기계'로 본다. 이를테면 들뢰즈의 '기계'는 무엇과 접속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들뢰즈는 '욕망하는 기계'들만 있다고 말한다. 이런 단편적인 장보는 김준의 절단된 신체들이 일종의 '욕망하는 기계'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김준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신체의 부위들은 매혹적이다. 그런데 그 매혹적인 신체의 부위들이 깨지기 쉬운 도자기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 점은 아름다운 화조도가 새겨진 미끈한 다리들이 춤추는 '댄스'에서 잘 나타난다. 김준은 관객에게 그 아름답고 미끈한 두 다리의 시각적 매혹에서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듯 청각적 사운드('텅!')를 통해 눈먼 시각을 깨운다. 김준은 아름답고 미끈한 두 다리를 깨지기 쉬운 도자기로 표현해 관객에게 '기이한 느낌(uncanny)'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는 관객에게 이미 낯선 느낌을 주었다. 김준은 '낮 익은' 몸을 디지털로 더 정교하게 만들어 관객들에게 '낯선' 몸으로 느끼게 했다. 그런데 이미 시각적 매혹에 길들어져 있는 관객은 '낯선' 몸에서 언캐니를 느끼기보다 오히려 시각적 매혹에 빠진다. 따라서 그는 이중 전략을 꾀한다. 시각적인 낯선 몸과 청각적인 낯선 몸이 그것이다. 왜 그는 우리에게 친밀한 대상으로부터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일까? 왜 그는 우리에게 시각적 매혹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일까? 혹 그는 우리의 몸을 '깨지기 쉬운' 욕망의 몸으로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김준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압권은 '버블(BUBBLE)'이라고 본다. 물론 앞의 4부작이 없다면 마지막 '버블'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버블'은 화조도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 이미지가 새겨진 오른팔 하나가 바닥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갑자기 손에서 작은 종기 혹은 종양 같은 것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그 작은 종기 혹은 종양 같은 것들이 손에서 팔로 확장되고 크기도 마치 비누물방울처럼 점점 더 커진다. 비누물방울이 거대하게 부풀더니 갑자기 '빵!'하고 터지면서 마치 바람처럼 사라진다. 왜 김준이 5부작 영상작품의 타이틀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명명했는지 감 잡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노예제를 지켜왔던 남부의 귀족적인 전통이 전쟁으로 인해 바람과 함께 사라졌음을 그린 것이다. 반면 김준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유기체적인 신체를 신봉했던 전통적인 신체론을 해체시켜 깨지기 쉬운 '욕망의 몸'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으로 그린 것이다. 만약 '욕망의 몸'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면? 스칼렛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Tomorrow is another day)."
- 류병학

김준_Gone with the wind-bubble_3D 애니메이션_loop_2017

김준_Gone with the wind-dance_3D 애니메이션_loop_2017

김준_Gone with the wind-crash_3D 애니메이션_loop_2017

김준_Gone with the wind-wake up_3D 애니메이션_loop_2017

데이터기준일자
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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